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맞아,

5.18묘역에 서니 감회가 매우 깊습니다.

37년 전 그날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광주 영령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고 계시는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월 광주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께 각별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슬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5.18때 구속된 일이 있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힘이 됐습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정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함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치열한 열정과 하나 된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광주 영령들이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성숙한 민주주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겠습니다.

전남도청 복원 문제는 광주시와 협의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습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해직되고 투옥 당했습니다.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참이 거짓을 이기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 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숨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대한민국 청와대

 

 

2017년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예순 두 번째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거룩한 영전 앞에

깊이 고개 숙입니다. 

가족을 조국의 품에 바치신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유공자 여러분께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오늘 이곳 현충원에서 ‘애국’을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식민지에서 분단과 전쟁으로, 가난과 독재와의 대결로,

시련이 멈추지 않은 역사였습니다.

애국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냈습니다. 

지나온 100년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킨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신념이었습니다.

항일의병부터 광복군까지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의 신념이 태극기에 새겨졌습니다. 

살이 찢기고 손발톱이 뽑혀나가면서도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조국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가를 키우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나라 잃은 설움을 굳건하게 살아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국가의 예우를 받기까지는

해방이 되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서러움, 교육받지 못한 억울함, 

그 부끄럽고 죄송스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 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는 동안,

목숨을 바친 조국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전선을 따라 늘어선 수백 개의 고지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피 흘렸던 우리 국군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짧았던 젊음이 조국의 땅을 넓혔습니다.

전선을 지킨 것은 군인만이 아니었습니다.

태극기 위에 위국헌신을 맹세하고 

후방의 청년과 학생들도 나섰습니다.

주민들은 지게를 지고 탄약과 식량을 날랐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철원 ‘백마고지’, 양구 ‘단장의 능선’과 ‘피의 능선’,

이름 없던 산들이 용사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비극이 서린, 슬픈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전우를 그곳에 남기고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호국용사들에게

눈물의 고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백골로 묻힌 용사들의 유해,

단 한 구의 유골이라도 반드시 찾아내 이곳에 모시겠습니다.

전장의 부상을 안고, 

전우의 희생을 씻기지 않는 상처로 안은 채 살아가는 용사들,

그 분들이 바로 조국의 아버지들입니다.

반드시 명예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이념에 이용되지 않고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에게 존경받도록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응당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답했습니다.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장애는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채입니다.

이제 국가가 제대로 응답할 차례입니다.

합당하게 보답하고 예우하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독립과 호국의 전장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1달러의 외화가 아쉬웠던 시절, 

이역만리 낯선 땅 독일에서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 되어준 분들이 계셨습니다.

뜨거운 막장에서 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석탄을 캔 파독광부, 

병원의 온갖 궂은일까지 견뎌낸 파독간호사, 

그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조국경제에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감사드립니다.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 분들입니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고 불렸던 그 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제는 노인이 되어 

가난했던 조국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그 분들께

저는 오늘,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의 훈장을 달아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는

그 자체로 온전히 대한민국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품속에 있던 태극기가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던 수많은 능선 위에서 펄럭였습니다.

파독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가

5.18과 6월 항쟁의 민주주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서해 바다를 지킨 용사들과 그 유가족의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도상의 화해를 넘어서, 마음으로 화해해야 합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입니다.


저와 정부는 애국의 역사를 존중하고 지키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공헌하신 분들께서

바로 그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데 앞장서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이념갈등을 끝내 주실 분들입니다.

이 나라의 증오와 대립, 세대갈등을 끝내 주실 분들도 

애국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무엇보다,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가는 길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보훈정책은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군사원호에서 예우와 보상으로,

호국유공자에서 독립, 민주유공자, 공무수행 유공자까지

그 영역도 확대되어 왔습니다.

국가유공자로 모시지는 못했지만

그 뜻을 함께 기려야할 군경과 공무원, 의인들을

예우하고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분들의 공적에는 많이 못 미칩니다.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가겠습니다. 

국회가 동의해 준다면,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강화하겠습니다.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이 애국심을 바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다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개인과 기업의 성공이 동시에 애국의 길이 되는 

정정당당한 나라를 다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다시 한 번 

순국선열, 호국영령, 민주열사의 애국헌신을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6일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글 출처 - 대한민국 청와대 -

 

https://youtu.be/3-hXsK39h1Y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2018-07-09
 
  •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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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세쉬 샤(Rashesh Shah) 인도상의 회장님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님,

양국 경제인 여러분,


나마스떼! 반갑습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인도에 오니, 20년 전 트레킹을 다녀왔던 라다크가 생각납니다.

라다크의 주민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전통적인 생활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현대 문명과 떨어져 있었지만 행복해 보였습니다.


오늘의 뉴델리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통의 바탕 위에 고층빌딩이 올라가고 도로는 차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매우 젊고 역동적입니다.


과거와 미래, 자연과 문명, 철학과 과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함 속의 조화가 인도의 발전을 이끄는 힘인 것 같습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답게 인도가 세계사에 남긴 발자취는 남다릅니다.


불교와 힌두교가 인도에서 탄생했고, 많은 인류가 두 종교로 마음을 수양합니다.

그 정신세계는 명상과 요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물의 세계에 인간의 정신을 접속한 것도 인도입니다.

숫자 영(0)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 세계를 무한대로 끌어올렸습니다.

십진법과 분수 개념도 수학에 도입했습니다.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물리적 원리에 심오한 정신세계를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가까이했던 인도의 젊은이들은 지금 실리콘밸리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벵갈루루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테크기업이 생겨나고, 인도 출신의 최고경영자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도가 문학, 물리학, 경제학, 평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의 상상력은 문화의 영역에서도 빛납니다.

볼리우드는 독창적인 영화산업으로 이어졌습니다.

70년대, 코끼리와 인간의 우정을 담은 인도영화 ‘신상’이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상영된 최초의 인도영화로 많은 한국 국민들을 울렸습니다.

최근에는 ‘세 얼간이’와 ‘당갈’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크게 기여하고,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끌고 있는 인도 국민과 경제인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양국 경제인 여러분,


저는 인도와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그 의지를 담은 것이 ‘신남방정책’입니다.

신남방정책은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더불어 잘사는, 사람중심의 평화공동체를 함께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사람(People), 상생번영(Prosperity), 평화(Peace)의 3P로 제시했습니다.


신남방정책은 모디 총리님이 추진하는 ‘신동방정책(Act East policy)’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신동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은 아시아 전체의 번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인도와 한국은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고, 어려울 때 도와 준 친구입니다.


고대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약 2천년 전 한국 가야국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도는 한국전 당시 의료지원단을 파견해 따뜻한 손길로 한국 국민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이제 양국의 교류는 국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인도 국민들은 현대차를 타고, 삼성 휴대폰을 사용합니다.

한국 국민들은 요가로 건강을 지키고, 카레를 즐겨 먹습니다.

제 딸도 한국에서 요가 강사를 합니다.

교류와 협력이 양국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성큼 더 나가, 더 깊은 우정으로 협력하자고 제안합니다.


인도와 한국은 세계 7위와 11위의 경제대국입니다.

하지만 작년 양국의 교역액은 200억 달러, 적지 않지만 기대에 못 미칩니다.

상호 보완적인 기술력과 산업구조를 감안하면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경제협력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뤄내길 기대합니다.

 

먼저 저는 기존의 3P 정책에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더해 ‘3P 플러스(+)’를 인도에 제안하고 싶습니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인도와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저와 대한민국의 의지입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한국은 인도의 ‘Make in India’ 정책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현재 500여개의 한국기업이 인도에 진출해 투자를 늘리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동차, 전자, 섬유가 중심이었지만, 앞으로 조선, 의료기기, 식품가공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또한 인도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100개 건설, 주요 도시 간 산업 회랑(Industrial Corridor) 건설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도 참가하길 희망합니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인프라와 신도시개발 분야에 우수한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뻗어있는 고속도로,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철이 그 상징입니다.

저는 한국이 인도에게 최적의 파트너라고 자신합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지금 양국이 함께 나그뿌르-뭄바이 고속도로, 깔리안-돔비블리와 반드라 스마트시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100억 달러 규모의 한-인도 금융패키지를 활성화하여 인프라 사업을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특히 양국 간 미래기술 협력은 시너지효과가 매우 클 것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입니다.


인도가 ‘Digital India’ 등 미래를 대비하여 역량을 집중하는 것처럼 한국 또한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신설하고, 혁신성장을 중점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도가 강한 세계적인 기초과학과 소프트웨어 기술, 한국이 강한 응용기술과 하드웨어가 서로 만나면 양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함께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정상회담에서 기존 과학기술 협력을 산업기술까지 확대한 ‘미래비전 전략그룹 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할 예정입니다.


우주항공 분야의 협력에도 기대가 큽니다.

우리별 3호를 인도 발사체가 우주로 실어주었습니다. 

양국이 힘을 모아 달 탐사에 성공한다면 국민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자유무역 확대는 양국 경제협력과 교류를 늘리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 협상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양국 간 교역 확대가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현재 정보통신에 치우쳐 있는 인적교류도 더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입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이 타결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양국 경제인 여러분,


한국은 지금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평화가 정착되면 한국의 투자여건은 더 좋아지고, 더 많은 사업기회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 한국에 투자할 적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투자하시면, 한국정부도 힘껏 돕겠습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반대편 네 형제의 배를 도와주어라. 

그러면 네 배가 해안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도 속담이 의미심장합니다.

먼저 돕고, 서로 도와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양국의 교류와 협력이 이제 번영과 희망의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해안에 배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한국이 돕겠습니다.

인도가 함께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글과 사진의 출처: 대한민국 청와대-

존경하는 우리 총장님께서 제게 아주 호의적인 소개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이자리가 매우 반갑고 기쁩니다.

우선 여러분의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특별히 기쁜 이유 중에 하나는

제가 자유롭지 않은 일을 오늘 할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기쁩니다.

대통령이 되면 대게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럴 기회를 가지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 이렇게 나왔습니다.

못하던 일을 하니깐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초청해 주신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오늘 일정을 결정하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

의전실에서 안됩니다. 하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안됩니다 하는 것을 되게 하려면 한참 싸워야 합니다.

이번에도 약간 싸웠습니다.

대학교가 많은데 하필이면 왜 연세대냐.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은 꾀를 내서 저를 초청했습니다. (환호)

그러나 세상사람들이 다 알리가 없죠.

그런 사정들을 다 생각하지 않으면, 왜 연세대 갔을까

대통령이 말을 아껴야 하는데 또 가서 무슨 소리를 할려고

또 끝나고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니깐 우리 의전실에서는 신경습니다.

우리 경호실에서는 혹시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도 합니다.

 

저는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손해보는 사람 없지않소?

그죠?

 

기회가 되면 다른 학교도 가겠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회가 있는게 아니니깐 못갈지도 모릅니다.

 

제가 하필이면 탄핵 소추 중이라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져있는데

초청이 오니깐 항상 그때처럼 여유가 있을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이 넉넉했던 거죠?

갑시다. (햇지요)

 

리더십 센터라는 이름이 근사해요~

좋지 않습니까?

리더십 얘기는 많은데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익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거기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면 좋겠다.

꼭 이번 강연만이 아니라 리더십연구하는데에는 저도 앞으로도 협력할 수 있는데 까지 협력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또 제 아들 며느리가 다 연대 출신입니다.

아마 그것도 결심에 약간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비서실장은 여러분이 잘 아시고요.

여러분들은 참 귀한 인재를 국가를 위해서 쓰게 용납해주셨습니다.

그럼 저도 보답이 있어야 안되겠습니까?

 

어떻게 살았는가..

낱낱히 다 공개가 되서 여러분이 모르는 게 없죠?

없지만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있는지 한번 말해봐라.

이런 뜻이겠죠?

여러분이 보신대로 아시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저의 삶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한 것일 겁니다.

성공했죠?

제가?

 

1. 성공의 비결은 먼가.

비결을 들어보시고 혼자만 성공하지 말고

우리나라도 국민도 함께 성공하는 비결을 내놓으시요~ 

그 희망을 말해도 좋을만큼 그야말로 비결을 내놓겠습니다.

 

2. 과연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는가?

혼자서 만드는것은 아니지만

저도 오늘 소망으로 말하면서 함께 한번 해보자 제안드리겠습니다.

 

멀리 내다보고 멀리 가야할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겠지만

3. 당장 이시기, 소위 시대적 과제 ,그것은 머라고 생각하는가?

한번 맞춰봅시다.

4. 그리고 몇가지 인기있는 쟁점들이 있습니다.

모두들 관심을 갖고 인터넷 토론방에서 주거니 받거니 논란하고 잇는 문제들에 대해 제가 가진 생각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장래의 계획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공의 비결

 

어떻게 살았는가.

아마 제가 제일 관심을 가졌던 것은 먹고 사는 것이였습니다.

멋지게 보람있게 가치있게 살기 이전에

그냥 그냥 삶에 대한 불안이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먹고 살았다.

그것이 첫번째 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크게 고생하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 먹고 살았던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래서 행복하다 답하고 싶습니다.

시대가 여러분과 좀 달라서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것이 중요하던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다음에 머했느냐?

사랑하고 아이낳고..  

지금은요.

손녀가 참 귀엽고 예쁩니다.

뻔하지요. 아무리 이뻐봤자 물시가 있습니다.

한계가 있지요

저를 보고 상상을 하십시요.

저의 희망은 저보다 예뻤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살았다. 이런것을 소중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섭리를 거역하지 않았다.

1-1)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고상한 가치가 있지만 그 어느 가치보다 섭리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려고 하고 그것을 존중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이거 깨닫는데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옛날에는 단지 산다는 것 이상의 가치, 뭔가 다른 가치, 하나님이 정해놓은 삶, 말고 내가 개척하는

좀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는 그런 삶을 모색해봤는데

결국 돌다 돌다 섭리에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혹시 속물적으로 살았다? 말해도 될지.. 어떻든 그렇게 살았습니다.

1-2)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했고 매 시기 승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렇게 보면 그럴것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계시고 크고 작은 승부를 이어가고 있을 겁니다.

무엇에 도전했는가?

현실, 현실의 문제데 도전했습니다.

어떤 관념과 주의를 먼저 내세우고 실현하기 위해 도전했다기 보다는

내 앞에 부닫쳐 있는 문제들에 도전했습니다.

제게 부닫친 문제는 끊임없이 변화햇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다닐때는 진학을 다닐 형편이 안될거 같아서 공무원 시험에 대비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저의 문제였죠

고등학교 다닐때도 취직. 어떻게 부모님을 좋을까

형편이 좋아지면서 고시 준비를 했는데 어떻게 성공을 할까.

고시 공부를 하면서는 성공이었습니다.

읍내아이들에 대해 약간의 열등감을 가진 시골아이여서 성공에 대한 집착이 조금은 더 강했는지 모릅니다.

성공하려고 고시를했습니다.

보통 대학교에 수석합격을 하고 나면

고시에 합격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가 되겠다.

돈이 없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

이런 말을 곧잘했습니다.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그런 꿈조차 없었습니다. 그냥 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왜? 출세니깐.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도중에 72년 10월 유신이 일어났습니다.

법이 짓밟힌 사건이죠.

아시죠 시월유신? 

볼거 없이 여러가지가 짓밟혔지만 그때 제가 보는 관점에선 법이 짓밟힌 사건입니다.

그러나 저는 유신헌법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되었습니다.

유신헌법 공부해서 고시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으니 유신판사 아닌가?

그렇게까진 아닌거 같습니다.

저희 부모는 예전에 창씨 개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친일파 아닌가? 생각하며 고심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건 우리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전후에 민족을 배반한 사람들을 숙청 햇는데

그때 숙청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것 인가가 굉장히 어려운 사회문제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숙청의 등급을,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등급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어느 등급에 해당 되어야 하는가.

우리도 여전히 친일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는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고 오늘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과거에 떳떳치 못했던 모든 사람이 숙청이 되면 저도 숙청 대상이 되야 합니다.

그럼 숙청 안될 사람 숫자가 얼마나 될려나 걱정이 됩니다.

어려운 문제 하나 던지고 넘어 가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현실의 문제라 햇는데

지금까지 드린 게 나의 문제엿습니다.

나로 부터 조금 벗어난 때가 변호사 시절입니다.

열심히 나를 위해 돈벌이를 했습니다만

변호사 비리를 한번 해소해보자. 없애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했습니다. 

법원과 검찰의 귄위주의.  변호사가 왜 가서 할말도 못하고 고개숙이고 손만 비비는.. 이런 문화를 바꿔보자는 도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재판부에선 찍힌 변호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서 혹시 당사자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았는가 불안이 있었습니다.

시국사건 변론을 했습니다.

아마 자기만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을 만난 충격, 자존심, 정의감 이런게 조금은 있었나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제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계산해 보니 8년뒤에는 대학교를 가게 되엇는데

80년대 초반 가서 배우면

자유 정의 민주주의를 배우게 되어있고

민주주의를 배우면 배운것과 다른 현실에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데모를 할거 같아요.

데모를 하면 이름이 적히고 평생 취직이 안되요.

죽도록 맞아요.

저도 제 뒤에 형사가 2~3사람 따라 다니는 사람이 되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어떻게 이 세상에 살지 않게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엇습니다.

그래서 문제 변호사가 되엇습니다.

오랫동안 도전하고 승부해왔습니다.

가장 어려운 적은 상대는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저의 이기심안에 있고 비겁함 안에 있고 안일함 안에 있습니다.

어떻든 이럭저럭 여기까지 왔습니다.

 

성공의 비결에 대해 말씀드리겟습니다.

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도

저는 만족합니다.

 

어떻게 해서 성공했을까?

1-3) 제가 성공한 비결은 확실하게 투자하라는 겁니다.

가진 것은 가지고 그리고 더 가지겠다는 거는 안전하기는 하지만 성공하는데는 큰 도움이 안되는 거 같습니다.

적어도 승부를 걸어야 되는 성공의 과정에는 투자를 할려면 확실해 해야 한다.

저는 제 인생을 걸었다 생각하면서 해왔습니다 .

성공보다는 당면한 문제에 몰두했습니다.

멀리 내다보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다볼 뿐이지

항상 현재에 전부를 투자했습니다.

후보가 되기 전에 경선 후보가 되엇을때 점을 쳐보고 제가 될꺼라 확신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되겠다고 나온 사람중에서는 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했습니다.

확실하게 투자했다는 것이죠.

역대 대통령들 보니 다 죽다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저 앞에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든 저런 이유로든 목숨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결코 찬성할 수 없지만

한강을 건널때 목숨을 걸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어떻든 쿠데타는 실패하면 죽는 겁니다.

공짜로 한거 아닙니다. 찬성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코 그분들은 공짜로 하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다들 돌아가실뻔 햇습니다.

저는 그런일은 없습니다 .

세상이 좋아진거죠.

목숨을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첫번째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밑천을 들인 것을 보면 그래도 제가 젤 가장 화끈하게 투자를  했더라고요.

똑똑하지 못할 바에는 제대로 못할바에는 정치 안한다.

 

1-4) 두번째 성공의 비결은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그렇게 자부합니다.

변호사를 할때 이미 세상을 알고 역사를 알고 했던것이 아니고 저 잘 먹고 할려고 했습니다만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를 바꾸고 부닫친 문제를 풀려고 사람이 바뀌어 왔다.

저는 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한게 아니고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며 저를 바꾸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항상 수용해왔습니다.

 

1-5) 그리고 그러기 위해 저는 열심히 공부를 해왔습니다.

세번째 비결은 공부입니다.

지금도 열심히 공부합니다.

 

네번째는 사주가 제법 괜찮답니다.

운칠기삼이라고 하는데

어떻든 그렇게 가다보니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상징적으로 비슷하게 보였나봅니다.

그러니깐 대통령 한번 하라 시켜준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2.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여러분들은 잘 모르지만

저는 공을 들여서 인수위시절에 국정목표를 만들었습니다.

2-1)국민과 함게하는 민주주의

2-2)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 균형사회면 되니깐 발전을 넣자고 해서 넣었습니다.

2-3)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먼가 섭섭하죠?

2-4)활력있고 넉넉한 나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더불어 살기도 하고 질높은 삶도, 품위잇고 문화적인 삶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부자나라 넣어야 되는데

4개가 되면 넘 낳아서 외우기도 어렵고 균형발전에도 발전이 발전도 잇고 평화와 번영에도 번영도 있으니깐

그걸로 잘사는 나라는 해소하자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달이 잘 안되는거 같아서

1. 활력있고 넉넉한 나라로 넣었음 좋겠습니다.

제가 그랫듯이 많은 국민들은 먹고 사는것이 가장 큰 건데 1번으로 넣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국정 목표 3개 위에도 넣을랍니다.

넉넉하고 활력있는 나라로 .

이런 나라가 어떤나라냐?

이런 나라가 되기 위해선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참여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려니 한나라당이랑 너무 닮았어요.

국정목표가 똑같애 . 그래서 차별화하자.

방향은 같다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다. 전략이 다르다.

그러므로 전략을 말하자.

전략

2-2-1) 원칙과 신뢰

2-2-2) 투명과 공정

2-2-3) 대화와 타협

2-2-4) 분권과 자유      

원칙이 바로서서 우리의 삶이 지배하는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겠느냐.

그래서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맞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제가 대통령 꿈꾸기도 훨씬 전부터 제가 주장해왔는데

제가 특허를 안냈지만 아무나 쓰면 안됩니다.

하나 더 보탠다면..

2-2-5) 희망과 낙관이 있는나라.

낙관적 희망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는 한번 더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뢰가 있는 나라야 됩니다.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

신뢰가 먼접니다. 인간이 경험한 사회중에는 전제군주, 귀족사회도 있고 독재도, 파시스트 사회도 있지만

그 모든 사회에서 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나와 한 약속을 지킬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별의별 장치를 다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속지 않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변호사를 하는데 계약을 맺을때 상대방이 위약할 때를 대비해서 계약서 만드는데 보름, 한달씩 걸립니다.

국가가 나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있을때 개인경호 시스템을 삽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경찰보다 개인경비고용으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나라. 정말 어렵습니다.

이 믿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 한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생깁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말 비슷하게 하는데 본 뜻을 왜곡시키려는 노력. 선의가 없이 맺은 계약은 그 방향으로 갑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사회 신뢰를 세우는 방법입니다.

이 신뢰중에 중요한 것 하나는 그 사회의 지도적 인사들의 행동입니다.

지도적 인사라고 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달리했을 때 그 때 그 사회의 신뢰가 붕괴됩니다.

지도자는 그야말로 말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말할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말을 버립니다.

한국적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한국적이란 말을 붙혀서 민주주의를 완전히 말살시켰습니다.

민주주의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휴우증이 엄청납니다.

물론 그때도 공정한 사회를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정의로운 사회. 기억나십니까?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내세운. 정의로운 사회.  

절대로 보통사람일수가 없는 분이 보통사람이라고 얘길해요.

오늘 이 강연이라는 것이 위험한 것이죠.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비방한 결과가 될거 같네요.

어쨋든 존재했던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서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머냐.

저는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3-1) 한국이 제대로 가려면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이 무너졌습니다.

힘이 없어서 무너졌죠.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분열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있어서 분열은 각별합니다.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살았던 시대가 너무 오래됐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하려고 해도 공존의 범위를 벗어나는 대립이 있을때는 공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일제시대.

친일하고 살자.

일본이 시키는대로 하고 살자. 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때문에

친일과 항일은 공존할 수 없는 가치인것이지요.

해방되고 난뒤

좌익, 우익으로 결코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대결의 시대를 걸어왔습니다.

독재와 반독재.

아무리 민주주의 한다하지만 독재와 어떻게 타협할수 있겠습니까

저항이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상대주의적 한계라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부정하는 사상과 행동이지요.

그래서 저항권이라는 것을 만들어놓앗습니다.

물론 개별국민들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반대할 자유가 폭넓게 존재하지만

국가 권력은 그래선 안된다. 자유의 폭이 다릅니다. 국가권력이 그럴수 없다.

적어도 국가 권력을 추구하는 조직적 집단이 그걸 요구한다면 용납할 수 없다.

지금도 그 연장선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극복할 거냐

3-1-1)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야지요.

이제 민주주의는 서로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만들어나가고 적어도 논리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절충을 해서 타협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냐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권력을 가고 있던 사람들,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 그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배제했죠

말하지 못하게 하고 말하면 잡아가두고 잡아넣기 위해 때리고. 심하면 죽이고 그랬죠.

배제의 시대를 우리가 십년간 살아왔습니다.

그 배제의 시대에 싹튼 저항의 논리가 또한 비타협 저항입니다.

비타협 저항 투쟁 노선입니다.

지금도 학생운동 일부 노선에 살아있죠.

문제 해결이 안되요.

한국은 이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야가 죽기살기로 살지 않더라도 4년뒤에 실적에 따라 다시 심판하지 않습니까

복수정당이라는 것이 당장의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지만 4년뒤에 바꿀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좀 엉뚱한 이야기지만

3-2)조폭문화를 청산해야 한다.

조폭문화는 자기들끼리는 칼같은 법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법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 사이에선 철저히 충성과 보상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것이 조폭문화입니다.

그 조직에 몸 담고 있을때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합니다.

아주 폐쇄적이고 특권적 집단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군국주의, 군대에도 살아있고 정치권력에도 이런 논리가 통했던 때가 있습니다.

보편적 지지가 없으니깐 보편적으로 승인된 가치를 부정하니간 많은 사람들의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저항이 있으니깐 더욱 더 강고하게 제압해야 되고 거기에 주종관계를 맺고 물질적 명예적 보상을 주면서 갈라먹기 하고

그렇게 외부세계의 보편적 법질서를 유린하는 것을 조폭적 법질서라 할수 있죠.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죠

 

3-2-1)정경유착 끊읍시다.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사이에 불합리한, 부당한 거래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일반국민이 피해를 입는다는 겁니다.

권언유착도 끊읍시다.

권언유착은 끊긴거 같은데 정언유착은 남아있는 거 같아요.

그 유착에는 부당한 이익과 특권이 발생합니다.

아직 정부아래 있는 권력기관에도 사고의 잔재가 남아있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참여의 정부가 끝날때는 다 없어질 겁니다.

정부 안에꺼는 제가 책임 지겟습니다.

정경유착도 높은 수준의 것은 다 정리를 하겠습니다.

청소를 다 하겠습니다.

권언유착도 제가 정리를 하겠습니다.

정언유착은 국민들이 좀 정리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권적 문화, 조폭문화를 청산하자.

 

대안적 운동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민주주의 권력은 끊임없이 견제받아야 합니다. 감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흔들어버리면 감사받는다고 일을 못합니다.

정권도 밤낮으로 감사만 하고 계속 흔들면 갈길 못가지요.

그래서 이제 비판과 더불어서 비판은 적절히,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대안없이 하는 비판은 그 사회의 효율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3-3) 창조적 대안운동. 이것이 참여의 한 형태로서 새롭게 자라났으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4-1)논란되는 문제에 관해서 진보와 보수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진보를 왼쪽에 놓고 보수를 오른쪽에 놓고 줄을 세우면

한국은 왼쪽으로 가면 일본, 미국사회, 그리고 더 가면 영국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여기가 무슨 진보, 보수.. 한심합니다.

 

우리나라의 복지예산, 세금과 재정의 재분배효과. 이런 등등을 정리하면 한심합니다.

일반적 복지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진보. 는 좌파고 빨갱이다.

그야말로 한국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다.

 

보수는 힘센 사람이 맘대로 하자 이겁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살마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적자생존의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하자. 약육강식이 우주의 섭리에 가깝습니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사람은 사회를 이뤄어살아야 되지 않나.

그러나 어느쪽도 극단적일 순 없지만

가급적 바꾸지 말자는 보수고 바꾸자는 진보죠.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에선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의 향수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를 갖다놔도 바꾸지 말자가 보수입니다.

 

4-2)성장과 분배는 반드시 배치되는 것인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쿠즈네츠 는 성장과 분배는 같이 안가면 둘다 망한다.

같이 가야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경제 위기론. 여러분들이 취직 걱정이 많으니 경제위기론이 실감이 나죠.

 

gdp 3.8% 성장했던 2001년이 우리나라의 경제가 그날로 붕괴할거 같은 분위기로 살았죠.

그 분위기때문에 경제가 더 살아나지 못하고 침체했다는 강력한 학설이 있죠.  

경제 위기론은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많은 지표들 보면 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지금 잘 관리하고 있으므로 제가 있을때까지는 문제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청년들의 일자리는 어떨것인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왜 그렇게 다들 대학을 가요?

전부 대학 가가지고 높은 자리만 할려고 하지 않습니까

산업 구조는 빨리 바뀌고 있고 지식서비스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성과는 언제 나오나.

시간이 좀 걸립니다.

아일랜드가 87년 노사합의를 하고 외자유치등 새로운 경제정책을 쓰고 했는데 고용이 살고 국민이 피부로 느낄때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93년에 신경제 100일을 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걸로 좋아진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는다 하고 엄살을 부리면 국민은 불안해하고 정부는 급하니깐 이 정책 저 정책 막 갖다쓰고 경제 파탄과 같은 사태가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89년의 위기론에 90년 진짜위기가 왔고 2001년 위기론에서 무리한 경제 정책이 오고 2002년에 위기가 진짜 와버린 것입ㄴ디ㅏ.

곰곰히 자료를 찾아보십시오. 아주 위험합니다.

그래서 누가 경제 위기를 가지고 어떻게 불안을 조성하더라도 저와 저의 경제팀들이 정말 면밀히 검토하고 따져서 철저히 분석해서 흔들림없이 의연하게 가겠습니다.

그동안 욕은 제가 먹으면서 가겟습니다.

일자리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상생에 대해 한마디 드리겟습니다.

4-3)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상생입니다.

상생은 진실하게 이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상생을 내새우면 그 상생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어떻게 하는것이 상생인지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변화할때  변화를 수용할줄 알아야하고 기득권을 버려야 할때 기득권을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장려해야 할때 낡은 문화를 고집하면 안됩니다.

시대의 흐름도 맞춰야 하고요.

글고 상생을 하는 기본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배제의 습관이 남아서 계속 배제하려고 하는 방법으로는 상생할 수 없습니다.

상생은 대화, 토론, 설득, 타협 그리고 얼추 다 합의 된거 같아도 안될때 표결하고 승복하는 겁니다.

승복해야 상생이 이뤄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 규칙을 무시하면 상생이 안되죠.

상생은 커녕 스포츠 게임도 안되는 거죠.

규칙을 잘 지킨 스포츠가 끝낫을 때 두 사람이 악수를 하고

반칙을 한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무슨 상생이 되겠습니까

규칙 승복 훌륭한 심판, 매우 중요합니다.

 

희망이 머냐.

패배를 넉넉히 수용할 줄 아는 그런 역량을 갖추고 싶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권력을 추구한 사람으로서는 하산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하산을 무사히 밟히지 않고 잘 햇으면 좋겠습니다.

등산은 올라갈때보다 내려올때가 항상 더 위험 하다고 합니다.

무사하게 하산할 수 있음 좋겠고

그러기 위해선 정상의 경치에 미련을 갖지 않아야 됩니다.

정상의 경치가 제겐 좋기도 하지만 골치아픈 일도 많습니다.

미련을 갖지 않겠습니다.

이건 말로 되는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기와의 승부, 속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제 자신이 여유있는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스려야 되는것.

그것이 제가 해야할 남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S2TBS5WHN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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